- CRE
- 2019-09-08
- 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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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동료심사를 금과옥조( 金科玉條: 소중히 여기고 반드시 지켜야할 법)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가?
그것은 나쁜 행위자들이 그 과정을 악용하거나 대중을 오도하기에 너무 쉽기 때문이다.”
원제 : (Why we shouldn’t take peer review as the ‘gold standard’?
It’s too easy for bad actors to exploit the process and mislead the public.)
작성: Paul D. Thacker, Jon Tennant
지난 7월, 인도 정부는 국가 경제성장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연구보고서를 “동료심사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플라스틱 공학자 회의에서 기업 소속의 한 경제학자는 근거 연구 중 일부가 “동료심사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플라스틱에 대한 환경적 우려를 반박했다. 그리고 (과학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 변화 보고서에 동료심사가 부족했다고 그릇되게 평하면서 이를 거부하고자 했다.
연구자들은 흔히 동료심사를 금과옥조인 것처럼 언급한다.
이 과정은 동료심사를 거친 논문(저널 편집자가 출판 이전에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겨서 평가와 비평을 받는 논문)은 틀림없이 정당한 것처럼, 심사를 거치지 않은 논문은 결코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17세기로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료심사라는 관행은 황금률도 아니고, 표준화된 것도 아니다. 여러 연구들은 저널 편집자들이 동성의 심사자들을 선호함을 보여준다.
이는 동료심사 과정에서 여성들이 과소 대표된다는 것이며, 심사자들이 저자의 성별이나 소속 기관 등과 같은 인구학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조잡한 연구가 종종 동료 심사자들을 뛰어넘기도 하며, 우수한 연구가 탈락하기도 한다. 동료 심사자들은 나쁜 연구나 이해 충돌, 기업의 유령저자 등을 걸러내는 데 종종 실패하곤 한다.
반면에 나쁜 행위자들은 전문적이거나 재정적인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권자들을 오도하기 위해 동료심사를 지렛대로 활용함으로써 동료심사 과정을 악용한다.
예를 들어, 미국 미식축구리그(NFL)는 1994년 자신들이 설립한 “경미한 외상성 뇌 손상 위원회”(Mild Traumatic Brain Injury Committee)가 선수들의 경기 중 뇌 손상으로 인한 장기적 피해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는 연구들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동료심사’라는 말을 이용했다. 그러나 나중에 뉴욕 타임즈는 관련된 과학자들이 그들의 연구에서 100건 이상의 뇌진탕 진단 사례들을 누락했음을 발견했다. 더구나 이 연구가 엄밀하게 검토되었다는 NFL의 주장은 그것의 동료심사 과정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논쟁적이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일부 심사자들은 그 논문들이 절대 출판되어서는 안 된다고까지 강경하게 주장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석 연료 기업들의 이해관계는 기후 변화에 관한 지배적인 과학적 합의를 침식하고 동료심사의 위신을 악용하는 연구를 후원함으로써 그 주제에 관한 공적 토론을 왜곡하고자 시도해왔다. 여러 해 동안, 기후 변화 회의론자들(기후 변화가 인간의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은 동료심사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와 환경”(Energy & Environment) 저널에 기후 과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신뢰성이 없는 연구들을 발표해왔다. (그 논문들 중 하나는 태양이 철로 이루어져 있다는 부정확한 발언까지 하고 있다.) 편집자들은 동료심사 과정에서 전형에 따라 심사자들을 선정한다. 그리고 “에너지와 환경”의 고참 편집자인 손자 뵈머-크리스티안센(Sonja Boehmer-Christiansen)은 자타가 공인하는 기후 변화 회의론자이다. 그녀는 2011년 “가디언”에서 “나는 기후 변화에 회의적인 논문들을 출판하는 일을 신중하게 장려해왔음을 밝히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대 초에 과학자들이 인간들이 얼마나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는가를 계산하고 있을 때, 조지 보이노비치(George V. Voinovich) 상원의원(오하이오, 공화당)과 같은 공적인 인물들이 정치적 행동을 지연시키기 위해 저널에 출판된 연구들을 인용하기 시작했다.
수 년 전, 하버드 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의 과학자 윌리 순(Willie Soon)이 저널에서 “설명 가능한 것들”이라고 기술한 연구들을 출판하기 위하여 화석 연료 기업들로부터 120만 달러를 받는 일이 일어났다. (그의 연구의 많은 부분은 태양 에너지의 변화가 최근의 지구 온난화를 대부분 설명할 수 있고, 인간들은 기후 변화에 거의 영향이 없다는, 대다수의 전문가들로부터 거부당한 가설을 주장하고 있다.) 동료심사는 이런 밀착된 관계들을 밝히지 못했다. “대기, 태양, 지구 물리학 저널”(Journal of Atmospheric and Solar-Terrestrial Physics)의 편집자는 이해 충돌 문제에서의 진실성은 저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동료심사가 연구지원자금의 출처를 밝히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령저자를 잡아내지도 못한다.
기업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원고를 (약간 고쳐서 또는 그대로) 출판하려는 학자들을 위해 원고를 작성한다. 한 저널의 편집자는 2010년 상원 재정위원회에서 저널에 제출된 원고에서 최소한 3분의 1이 홍보회사(public relations agency) 같은 유령저자들이 쓰고, 제약회사들이 돈을 지불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런 연구들은 수십 종의 저널들에 나타나며, 펜실바니아 대학, 브라운 대학, 하버드 대학 등의 교수들도 유령저자 논란에 연루되어 있다. 지난 해, 법원 기록은 몬산토(Monsanto)가 제초제 ‘글리포세이트’(glyphosate)의 발암성에 대한 연구를 반박하고 규제 당국을 공격하기 위해, 동료심사를 거치는 저널에 유령저자가 쓴 원고를 발표하게 했다고 밝혔다.
또한 동료심사는 때로는 중요한 연구를 방해한다.
고참 과학자들은 투고된 원고를 평가해달라고 부탁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들은 자신의 견해와 충돌하는 원고들을 탈락시킬 수 있다. 그 결과, 동료심사는 현상 유지를 방어하는 방패로 작용할 수 있고, 심사자들이 갖는 기존의 시각에 대해 급진적이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연구를 억압할 수 있다. 1,000건의 의학 저널 투고를 대상으로 한 2015년 연구는 최종 출판된 논문들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14편은 초기에 거부되었음을 밝혀냈다.
프랭크 버넷(Sir Frank MacFarlane Burnet), 로잘린드 얄로우(Rosalind Yalow), 바루흐 블룸버그(Baruch Blumberg) 등의 연구처럼 토대부터 바꾸는 연구들은 동료심사자들로부터 거부되었으나, 나중에 노벨상을 받았다.
과학자들은 그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동료심사가 필요함을 이해한다. 우리가 동료심사 없이 어떻게 연구를 해나갈지 상상하기란 어렵다. 그들은 또한 그것도 인간이 하는 일이며 따라서 인간적인 실패도 많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미묘함은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출판과정에서의 더 높은 투명성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지식이 형성되는가에 대한 더욱 섬세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동료심사를 거쳤다”는 것이 곧 확정된 진실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적어질 것이다.
*원문 출처: Washington Post 기사 (2019년 8월 1일)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why-we-shouldnt-take-peer-review-as-the-gold-standard/2019/08/01/fd90749a-b229-11e9-8949-5f36ff92706e_story.html?noredirec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