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구윤리국(Office of Research Integrity, ORI)에 보고된 연구부정행위를 조사한 결과, 연구부정행위가 발생한 연구실에서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유난히 경쟁이 치열하고 갈등이 심하다는 것, 교수가 학생에게 갑작스럽게 연구 결과나 보고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학생들이 소속되어 있다는 것 등이 대표적인 유형에 속했다.
연구실에 경쟁과 갈등이 심하거나 갑자기 결과를 요구하는 연구책임자가 있을 때, 소속 연구원들은 당연히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런 상황은 부적절한 방법이 동원될 확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능력이 모자라는 연구자가 아니라, 능력이 출중해 촉망받는 연구자들이 연구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은 좀 뜻밖의 이야기다. 왜 그럴까?
매우 우수한 학생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경우, 무엇이든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적절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거나 다른 실험실로 옮기게 되면, 경험과 능력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수한 학생이라 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별로 가르쳐 주는 일은 없이 기대만 잔뜩 거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학생은 기대에 부응해서 결과를 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을 느끼게 된다. 잘 모르는 것이 있어도 ‘너라면 이 정도는 다 알고 있겠지?’라는 눈빛을 받고, 그 때문에 작은 궁금증이 있어도 물어보기 어려워진다. 또한, 결과를 내더라도 ‘네가 한 일이니, 당연히 잘 되었겠지.’라며 검증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결국 우수한 학생을 연구부정행위의 늪에 빠지게 한다.
이 글은 『이공계 대학원생을 위한 좋은연구 Q&A』에서 발췌했습니다.
지은이: 손화철, 윤태웅, 이상욱, 이인재, 조은희. 『이공계 대학원생을 위한 좋은연구 Q&A』, 2009.